[기고] 한인, 더는 ‘기타’ 항목 아니다
로버트 우드 존슨 재단(RWJF)에서 프로그램 수석 책임자로 일하는 한인 티나 카우는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각별하다. 그의 부모님은 1970년대 미국에 이민 와 필라델피아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했다. 그는 “부모님은 하루 14~15시간씩, 주 7일 일했다. 흔히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들 하지만, 부모님은 너무나 힘들게 일한 탓에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돌볼 여유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카우씨는 펜스테이트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과학자가 된 후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부모님이 겪었던 어려움을 다른 아시아계 이민자들도 비슷하게 겪었을 텐데 아시아계 부모와 가족에 대한 학계의 연구는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먼저 아시아계 이민자의 건강에 대한 연구를 구상했으나, 자금 지원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는 “아시아계에 대한 통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아무런 데이터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카우씨는 “한인을 비롯한 아시아계는 현재 미국 인구의 6%를 차지하지만, 국립보건원(NIH) 연구자금의 1% 미만이 아시아계를 위한 건강 연구에 할당되고 있다”며 “아시아계 연구의 필요성을 입증할 데이터가 너무 부족하다”고 말했다. 카우씨의 말처럼, 미국 정부기관 및 공식 통계에는 한인 등 아시아계에 대한 통계 자료가 매우 부족하다. ‘백인’ ‘흑인’ ‘라티노’ 정도만 묻는 설문조사가 많기 때문이다. ‘아시안’ 또는 ‘코리안’이냐고 묻는 설문지는 매우 드물다. 따라서 아시안, 또는 한인에 대한 별도의 통계자료도 부족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한인들은 정부기관 등의 설문조사에 자신의 인종을 ‘기타’ 항목에 체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 한인 선교사는 선교사업을 위해 정부기관에 드나들 때마다 입구의 경찰이 자신의 인종을 ‘흑인’으로 체크하는데 대해 불만을 느끼지만, 직접 대놓고 말하기 어려웠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가진 한인들은 의외로 많을 것이다. 타인종도 이런 사정은 마찬가지다. 리더십 콘퍼런스 교육 기금에서 일하는 미타아난드는 아이티인 어머니와 인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설문지를 작성할 때 내 정체성을 선택할 수 있는 항목이 없어 항상 ‘기타’ 항목에 표시해야 했다”고 말했다. 정부기관의 이러한 관행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방 예산관리국(OMB)은 지난 3월 28일 센서스국과 연방 기관이 시행할 새로운 데이터 수집 기준을 발표했다. 새 기준은 아시안, 한인 등 다양한 내용을 통합한 질문을 도입하고, 자신의 인종을 한 가지만이 아닌 여러가지로도 선택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인-히스패닉 부부의 자녀는 설문조사에 ‘히스패닉’과 ‘코리안’을 동시에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RWJF의 이사인 게일 크리스토퍼 박사는 “민주주의의 건강성과 생존 가능성을 고려할 때, 다양한 인구의 실제 경험을 반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이 미국에서 인종 문제와 직면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의의를 밝혔다. 최근 한인 인구가 늘고 영향력도 커지면서 주류 정치인들이 한인 사회에도 관심을 보인다. 이들이 정책을 수립하면서 언제나 하는 질문은 “한인 인구가 모두 몇 명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센서스 이외에는 ‘한인들만을 다룬’ 통계 자료가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 현실이다. 한인이 더는 ‘기타’ 항목이어서는 안된다. 앞으로 다양한 정부기관의 조사 및 설문지에는 ‘아시안’ ‘코리안’ 항목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는 한인 사회의 영향력과도 연결되는 문제다. 이종원 / 변호사기고 한인 아시안 한인 한인 사회 아시아계 부모